2020년 김정은과 한반도 정세
1. 서론 북한에서 김정은 집권 이래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육성 신년사가 불발되면서 2020년 북한의 정치체제와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에서 신년사는 한해 정책과 노선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2019년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4일간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이하 전원회의) 내용을 2020년 1월 1일 공개하면서 2020년 신년사를 갈음했다. 이는 1956년 8월 연안파를 숙청한 후 같은 해 12월 3일간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개최한 후 1957년 신년사를 생략한 김일성의 행보와 닮아있다.
북한은 1986년 12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사회주의의완전한 승리를 위하여’라는 시정연설을 한 후 1987년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공개된 내용으로 볼 때 국내적 어려운 형국이 조성됐다는 위기상황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이례적인 것은 노동당대회에 버금가는 4일간의 긴 일정, 대내외 문제를 망라한 포괄적인 의제 논의, 당중앙위원회 및 대규모의 방청 동원 등을 통해 노동당의 총의를 모으는 형식을 취한 점이 이색적이다. 2012년 김정은은 집권 첫 해에 “우리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그 실행이 불가능해지자 신년사의 단독 연설을 거부하고 대규모 방청객들을 이해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김정은이 공언했던 ‘새로운 길’의 초기 윤곽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일단 미국과의 기 싸움에서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신중한 길을 택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미국 태도의 ‘이중성’ 속에서 일방적으로 자주권과 국가안전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서 표면적으로 ‘새로운 길’의 핵심 키워드로 ‘정면돌파’를 내세웠다. 즉 미국과의 ‘교착상태’가 장기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군사적 핵억제력 및 내부결속을 강화해 응집력을 키우겠다는 요지로 읽힌다.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은 우려했던 북미대화 중단 선언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난해 4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미국에게 전향적 자세로 나올 것을 요구하며 연말까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응징하겠다고 위협했었다. 그러 나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별도의 언급 없이 향후예상되는 북미관계를 ‘교착상태의 장기성’으로 표현하면서 미국의 대북한 변화입장에 따라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또한관심사항이었던 ‘핵무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도 없었다. 다만, 장기적 안전이 담보되기 전까지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새로운 전략무기’의 지속적 개발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매체를 통한 담화에서는 북한이 언급한 연말시한 부분에 있어 크리스마스 선물 위협과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12월 3일 이태성 외무성 부상은 담화에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했다. 이는 미국 측의 주목을 끄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북한 최고지도자가 “연말까지 인내력을 가지고 미국의 새로운 셈법을 기다리겠다”던 시한과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이 ‘연말’까지라고 데드라인을 공시했는데 외무성 관리가 ‘크리스마스’라고 언급해 혼동을 유발한 셈이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발언을 생명 줄로 여기는 북한체제의 특성상 이태성의 이 같은 실수는 당연 ‘문책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의 전략을 예측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또한 김정은은 북한이 북미 신뢰구축을 위하여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선제적인 중대조치들을 취한 지난 2년 동안 미국은 이에 화답하기는커녕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합동군사연습들을 수십 차례나 벌려놓고 첨단전쟁 장비들을 남한에 반입하여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였다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또한 대북제재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했다. 미국이 십여 차례의 단독 제재조치들을 취함으로써 북한을 압살하려는 야망에 변함이 없었다면서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면서 지켜주는 상대방도 없는 공약에 더 이상 일방적으로매여 있을 근거가 없어졌다면서 “이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2. 당전원회의를 통한 김정은의 노림수 김정은은 이번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대미전략의 승부 카드로 크게 ‘장기전, 전략무기개발, 선 적대시정책 철회 요구’를 내세웠다. 우선 대미 장기전이다. 장기전 언급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실제 장기전을 대비한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대북제재의 해제가 단기간 어렵다는 판단 아래 국가운영을 ‘장기전체제’로 조정하는 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향후 1년간을 정세의 불확실성을 ‘관망’하고 ‘기회’를 포착하는 ‘정치적 시간’벌기용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적 불확실성, 대선 판세가 정리될 때까지 판을 완전히 깨지 않으면서 일정한 긴장성을 유지하기 위한 용도로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북미대화를 미국이 ‘정치·외교적 이속 차리기’, ‘불순한 악용’을 한다는 비난은 역으로 북한이 정치적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종합한다면, 이번 전원회의는 향후 1년간의 정세불확실성에 대응해 통치차원의 ‘장기전 체제’로의 전환, 대외적으로 미국 국내정치 향방을저울질할 ‘정치적 시간’을 벌기용으로 분석된다. 그런 측면에서 향후 북미관계를 ‘교착의 장기성’으로 규정한 것은 과도적 운신을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전략무기 개발이다. 관심사항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핵무기’에 대한 직접 언급은 없었지만, 장기적 안전이 담보되기 전까지 ‘새로운 전략무기’의 지속적 개발 의사를 밝힌 것이다. 경제의 자력강화가 대북제재에 대응한 대내용 카드라면, 전략무기 개발은 대미 압박용 카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략무기’의 북한식 정의를 모호하게 처리한 점에서 미국의 반응과 정세에 따라 대응 수위를 다르게 설정하기 위한 모호성으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의모호성 발언은 핵억제력 강화라는 용어에서도 표현되었다.
이 대목에서 북한은 미국의 입장에 따라 자기들의 핵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를 조절하겠다고했는데 북한 주민들이 보는 한글 표현에는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썼지만, 대외용 영문으로는 ‘properly co-ordinated’로 ‘적절히 조정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북한 내부 주민들에게 자기들이 미국을 응징하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미국에게는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이율배반적인 눈치보기이다.
다음은 선 적대시정책 철회이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 철회’전까지 비핵화 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해 10월 스톡홀름 북미실무협상 결렬 직후 주장했던 구도를 보다 명확히 한 것이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보였던 ‘대북제재 해제와 비핵화 동시 교환’에서 한층 높아진 구도 설정이다. 향후 대미전략의 핵심구도를 ‘선 대북적대시정책 철회, 후 비핵화 협상’으로 설정한 것은 김정은이 사실상 ‘선 대북제재(단계적 또는 부분적) 해제 조치, 후 비핵화 협상’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으로 외교적 공세성, 대미 공략법의 수위를 높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전략은 ‘비핵화 대 안전보장’ 교환구도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도로써 한국에 제공되는 미국의 핵우산 제거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핵군축’을 의미한다. 사실상 비핵화의 범위를 북한의비핵화뿐만 아니라 한국에 핵억제력 제거를 포함하는 전략이다. 김정은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세계적인 핵군축과 전파방지(비확산)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언급은 그런 차원으로 읽힌다.
신년사를 생략한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대내외 문제를 망라한 포괄적인 의제 논의와 당중앙위원회 및 대규모의 방청 동원 형식을 취한 점이특징적이다. 이는 권력 서열 1위부터 300위까지의 모든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집단 결정의 위엄을 보여주어 나중이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김정은이 ‘나 혼자 결정한 게 아니라 집체적인 결정’이었다고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전략도 엿볼 수있다. 지난 2년 동안 김정은은 국제사회에 비핵화를 약속하고 주민들에게는 강성국가 건설을 주도해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에 대한 책임 부담이 있어 내핍을 강조하는 새로운 길로의 전환을 다시금 얘기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전원회의 결정으로 신년사를 대체한 것도 2019년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이 제시했던 과업들의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을 의식해서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2020년 ‘정면돌파전’과 대내 결속을 위한 당지도부 조직 정비를 단행했다. 노동당 핵심 엘리트 진용인 전문부서 부장의 2/3가 교체됐다.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구체화한 국가건설론 4개 축 중 하나인 ‘당의 영도 보장’의 연속선상에서 대미 ‘장기전체제’ 일환으로 연도체계의 강화를 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이례적으로 경제사업의 전반적 문제를 가감 없이 밝히고 성과나 전망보다는 관리의 문제점 지적에 많은 비중이 할애됐다. “나라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았다”거나 국가의 집행력, 통제력이 약화, 과도적이고 임시적인 사업방식, 내각의 경제사령부로서 역할 미약 등이 지적됐다. 이는 경제의 ‘장기전체제’로의 전환, 자력강화를 위해 큰 틀에서 사업방식을 바로잡겠다는 취지가 강해 보인다. 지난해 정세전환 이후 내각의 역할 강화를 주문해왔으나, 경제 사업에서의 당과 행정의 오랜 갈등구조, 경제난 이후 특권경제의 구조화, 짧은 기간과도하게 펼쳐놓은 국책건설사업 등이 변화하는 현실 경제와 충돌하는 데서 나타나는 난맥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이 제시한 해결방법들은 국가 통제 역량을 끌어올리는 차원도 있지만, 크게 보면 국가와 시장의 연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국가가 관리하기 위한 목적도 있어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번 북한의 당 전원회의는 첫째, ‘새로운 길’의 윤곽을 드러냈는데 일단 ‘레드라인’은 넘지 않는 신중한 길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둘째, 북미대화 중단 선언은 없었고 교착상태의 장기성을 표현해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셋째,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고 버티는 자력갱생과 핵억제력 강화의 길을 선택하는 한편, 미국의 태도에 따라 대화의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3. 한반도 정세 지난해 10월 김정은이 백두산 군마 등정 보도에서 밝힌 ‘웅대한 작전’, ‘새로운 전략노선’은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번 전원회의 결과는 상당한 준비와 고민을 통해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크다. 일단 우려했던 소위 ‘레드라인’을 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한반도 정세를 적극적으로 관리하지않는다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1~2월이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원 탄핵심판, 미 국무부 대북협상팀 진용 정비, 미 재선 레이스 등의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걷혀야 대북 협상에 대한 집중력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이 기간에 한국과 미국이 북미협상의 불씨를 살리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대북 메시지’와 ‘선언적 조치’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
2020년 한반도 문제의 최대 관심사는 3차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 여부와 북한의 ‘새로운 길’ 선택 여부로, 초기에 북한은 북미 대화 거부, 핵보유국 선언, 핵역량 증강, 중국·러시아와 협력 확대, 위성 탑재 로켓 발사,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등으로 핵 위기와 전쟁 위기를 고조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중의 강한 반발을 초래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는 당분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1일 주용철 북한 제네바대표부 참사관은 미국이 제재를 고집한다면 ‘새로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밝힌 ‘새로운 길’의 윤곽과 다른 의미로 더 한층 강화된 ‘길’로 보인다. 최후통첩으로 북한은 미국과 한국을배제한 중국과 러시아에 비핵화 의지를 입증하고 대북제재 동참을 거부해 3국과의 무역 교류로 경제 발전을 꾀할 수 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상반기 중 북한 핵실험 중단의 외교적 성과를 지키기 위해 3차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낮은 수준의 핵 합의에 동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한반도는 북핵 위기 사이클을 지나, 하반기에는 다시 대화, 협력의 사이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이며, 우리 정부는 교류, 협력과 평화 정착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상반기에는 남북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보인다. 한국은 총선이 예정되어 있고, 북한은 창군절 열병식과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기념 등의 행사가 이어지며 전반적으로 국내적 요인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이 더딜 것으로 보이지만, 하반기에는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은 타결 상황, 지지부진한 상황, 결렬 상황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볼 수 있는데 비핵화 협상 타결 시에는 한국이 적극적으로 관계개선을 할 수 있지만, 나머지 두 경우에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파탄국면으로 몰아갈 수 있으므 합리적 대안이 필요하다. [출처] 군사저널 - http://www.gunsa.co.kr/bbs/board.php?bo_table=B01&wr_id=572 |
2020년 김정은과 한반도 정세
1. 서론 북한에서 김정은 집권 이래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육성 신년사가 불발되면서 2020년 북한의 정치체제와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에서 신년사는 한해 정책과 노선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2019년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4일간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이하 전원회의) 내용을 2020년 1월 1일 공개하면서 2020년 신년사를 갈음했다. 이는 1956년 8월 연안파를 숙청한 후 같은 해 12월 3일간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개최한 후 1957년 신년사를 생략한 김일성의 행보와 닮아있다.
북한은 1986년 12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이 ‘사회주의의완전한 승리를 위하여’라는 시정연설을 한 후 1987년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공개된 내용으로 볼 때 국내적 어려운 형국이 조성됐다는 위기상황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이례적인 것은 노동당대회에 버금가는 4일간의 긴 일정, 대내외 문제를 망라한 포괄적인 의제 논의, 당중앙위원회 및 대규모의 방청 동원 등을 통해 노동당의 총의를 모으는 형식을 취한 점이 이색적이다. 2012년 김정은은 집권 첫 해에 “우리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그 실행이 불가능해지자 신년사의 단독 연설을 거부하고 대규모 방청객들을 이해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김정은이 공언했던 ‘새로운 길’의 초기 윤곽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일단 미국과의 기 싸움에서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신중한 길을 택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미국 태도의 ‘이중성’ 속에서 일방적으로 자주권과 국가안전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서 표면적으로 ‘새로운 길’의 핵심 키워드로 ‘정면돌파’를 내세웠다. 즉 미국과의 ‘교착상태’가 장기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므로 군사적 핵억제력 및 내부결속을 강화해 응집력을 키우겠다는 요지로 읽힌다.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은 우려했던 북미대화 중단 선언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난해 4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미국에게 전향적 자세로 나올 것을 요구하며 연말까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응징하겠다고 위협했었다. 그러 나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별도의 언급 없이 향후예상되는 북미관계를 ‘교착상태의 장기성’으로 표현하면서 미국의 대북한 변화입장에 따라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또한관심사항이었던 ‘핵무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도 없었다. 다만, 장기적 안전이 담보되기 전까지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새로운 전략무기’의 지속적 개발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최근 북한매체를 통한 담화에서는 북한이 언급한 연말시한 부분에 있어 크리스마스 선물 위협과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12월 3일 이태성 외무성 부상은 담화에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했다. 이는 미국 측의 주목을 끄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북한 최고지도자가 “연말까지 인내력을 가지고 미국의 새로운 셈법을 기다리겠다”던 시한과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이 ‘연말’까지라고 데드라인을 공시했는데 외무성 관리가 ‘크리스마스’라고 언급해 혼동을 유발한 셈이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발언을 생명 줄로 여기는 북한체제의 특성상 이태성의 이 같은 실수는 당연 ‘문책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의 전략을 예측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또한 김정은은 북한이 북미 신뢰구축을 위하여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선제적인 중대조치들을 취한 지난 2년 동안 미국은 이에 화답하기는커녕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합동군사연습들을 수십 차례나 벌려놓고 첨단전쟁 장비들을 남한에 반입하여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였다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또한 대북제재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했다. 미국이 십여 차례의 단독 제재조치들을 취함으로써 북한을 압살하려는 야망에 변함이 없었다면서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면서 지켜주는 상대방도 없는 공약에 더 이상 일방적으로매여 있을 근거가 없어졌다면서 “이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2. 당전원회의를 통한 김정은의 노림수 김정은은 이번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대미전략의 승부 카드로 크게 ‘장기전, 전략무기개발, 선 적대시정책 철회 요구’를 내세웠다. 우선 대미 장기전이다. 장기전 언급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실제 장기전을 대비한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대북제재의 해제가 단기간 어렵다는 판단 아래 국가운영을 ‘장기전체제’로 조정하는 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향후 1년간을 정세의 불확실성을 ‘관망’하고 ‘기회’를 포착하는 ‘정치적 시간’벌기용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내적 불확실성, 대선 판세가 정리될 때까지 판을 완전히 깨지 않으면서 일정한 긴장성을 유지하기 위한 용도로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북미대화를 미국이 ‘정치·외교적 이속 차리기’, ‘불순한 악용’을 한다는 비난은 역으로 북한이 정치적으로 이를 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종합한다면, 이번 전원회의는 향후 1년간의 정세불확실성에 대응해 통치차원의 ‘장기전 체제’로의 전환, 대외적으로 미국 국내정치 향방을저울질할 ‘정치적 시간’을 벌기용으로 분석된다. 그런 측면에서 향후 북미관계를 ‘교착의 장기성’으로 규정한 것은 과도적 운신을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전략무기 개발이다. 관심사항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핵무기’에 대한 직접 언급은 없었지만, 장기적 안전이 담보되기 전까지 ‘새로운 전략무기’의 지속적 개발 의사를 밝힌 것이다. 경제의 자력강화가 대북제재에 대응한 대내용 카드라면, 전략무기 개발은 대미 압박용 카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략무기’의 북한식 정의를 모호하게 처리한 점에서 미국의 반응과 정세에 따라 대응 수위를 다르게 설정하기 위한 모호성으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의모호성 발언은 핵억제력 강화라는 용어에서도 표현되었다.
이 대목에서 북한은 미국의 입장에 따라 자기들의 핵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를 조절하겠다고했는데 북한 주민들이 보는 한글 표현에는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썼지만, 대외용 영문으로는 ‘properly co-ordinated’로 ‘적절히 조정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북한 내부 주민들에게 자기들이 미국을 응징하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미국에게는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이율배반적인 눈치보기이다.
다음은 선 적대시정책 철회이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 철회’전까지 비핵화 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해 10월 스톡홀름 북미실무협상 결렬 직후 주장했던 구도를 보다 명확히 한 것이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보였던 ‘대북제재 해제와 비핵화 동시 교환’에서 한층 높아진 구도 설정이다. 향후 대미전략의 핵심구도를 ‘선 대북적대시정책 철회, 후 비핵화 협상’으로 설정한 것은 김정은이 사실상 ‘선 대북제재(단계적 또는 부분적) 해제 조치, 후 비핵화 협상’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으로 외교적 공세성, 대미 공략법의 수위를 높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전략은 ‘비핵화 대 안전보장’ 교환구도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도로써 한국에 제공되는 미국의 핵우산 제거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핵군축’을 의미한다. 사실상 비핵화의 범위를 북한의비핵화뿐만 아니라 한국에 핵억제력 제거를 포함하는 전략이다. 김정은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세계적인 핵군축과 전파방지(비확산)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언급은 그런 차원으로 읽힌다.
신년사를 생략한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대내외 문제를 망라한 포괄적인 의제 논의와 당중앙위원회 및 대규모의 방청 동원 형식을 취한 점이특징적이다. 이는 권력 서열 1위부터 300위까지의 모든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집단 결정의 위엄을 보여주어 나중이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김정은이 ‘나 혼자 결정한 게 아니라 집체적인 결정’이었다고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전략도 엿볼 수있다. 지난 2년 동안 김정은은 국제사회에 비핵화를 약속하고 주민들에게는 강성국가 건설을 주도해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에 대한 책임 부담이 있어 내핍을 강조하는 새로운 길로의 전환을 다시금 얘기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전원회의 결정으로 신년사를 대체한 것도 2019년 신년사를 통해 김정은이 제시했던 과업들의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을 의식해서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2020년 ‘정면돌파전’과 대내 결속을 위한 당지도부 조직 정비를 단행했다. 노동당 핵심 엘리트 진용인 전문부서 부장의 2/3가 교체됐다.
지난해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구체화한 국가건설론 4개 축 중 하나인 ‘당의 영도 보장’의 연속선상에서 대미 ‘장기전체제’ 일환으로 연도체계의 강화를 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이례적으로 경제사업의 전반적 문제를 가감 없이 밝히고 성과나 전망보다는 관리의 문제점 지적에 많은 비중이 할애됐다. “나라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았다”거나 국가의 집행력, 통제력이 약화, 과도적이고 임시적인 사업방식, 내각의 경제사령부로서 역할 미약 등이 지적됐다. 이는 경제의 ‘장기전체제’로의 전환, 자력강화를 위해 큰 틀에서 사업방식을 바로잡겠다는 취지가 강해 보인다. 지난해 정세전환 이후 내각의 역할 강화를 주문해왔으나, 경제 사업에서의 당과 행정의 오랜 갈등구조, 경제난 이후 특권경제의 구조화, 짧은 기간과도하게 펼쳐놓은 국책건설사업 등이 변화하는 현실 경제와 충돌하는 데서 나타나는 난맥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이 제시한 해결방법들은 국가 통제 역량을 끌어올리는 차원도 있지만, 크게 보면 국가와 시장의 연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국가가 관리하기 위한 목적도 있어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번 북한의 당 전원회의는 첫째, ‘새로운 길’의 윤곽을 드러냈는데 일단 ‘레드라인’은 넘지 않는 신중한 길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둘째, 북미대화 중단 선언은 없었고 교착상태의 장기성을 표현해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셋째,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고 버티는 자력갱생과 핵억제력 강화의 길을 선택하는 한편, 미국의 태도에 따라 대화의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3. 한반도 정세 지난해 10월 김정은이 백두산 군마 등정 보도에서 밝힌 ‘웅대한 작전’, ‘새로운 전략노선’은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이번 전원회의 결과는 상당한 준비와 고민을 통해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크다. 일단 우려했던 소위 ‘레드라인’을 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한반도 정세를 적극적으로 관리하지않는다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1~2월이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원 탄핵심판, 미 국무부 대북협상팀 진용 정비, 미 재선 레이스 등의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걷혀야 대북 협상에 대한 집중력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이 기간에 한국과 미국이 북미협상의 불씨를 살리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대북 메시지’와 ‘선언적 조치’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
2020년 한반도 문제의 최대 관심사는 3차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 여부와 북한의 ‘새로운 길’ 선택 여부로, 초기에 북한은 북미 대화 거부, 핵보유국 선언, 핵역량 증강, 중국·러시아와 협력 확대, 위성 탑재 로켓 발사,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등으로 핵 위기와 전쟁 위기를 고조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중의 강한 반발을 초래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는 당분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1일 주용철 북한 제네바대표부 참사관은 미국이 제재를 고집한다면 ‘새로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밝힌 ‘새로운 길’의 윤곽과 다른 의미로 더 한층 강화된 ‘길’로 보인다. 최후통첩으로 북한은 미국과 한국을배제한 중국과 러시아에 비핵화 의지를 입증하고 대북제재 동참을 거부해 3국과의 무역 교류로 경제 발전을 꾀할 수 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상반기 중 북한 핵실험 중단의 외교적 성과를 지키기 위해 3차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낮은 수준의 핵 합의에 동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한반도는 북핵 위기 사이클을 지나, 하반기에는 다시 대화, 협력의 사이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이며, 우리 정부는 교류, 협력과 평화 정착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상반기에는 남북관계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보인다. 한국은 총선이 예정되어 있고, 북한은 창군절 열병식과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기념 등의 행사가 이어지며 전반적으로 국내적 요인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이 더딜 것으로 보이지만, 하반기에는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은 타결 상황, 지지부진한 상황, 결렬 상황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볼 수 있는데 비핵화 협상 타결 시에는 한국이 적극적으로 관계개선을 할 수 있지만, 나머지 두 경우에는 북한이 남북관계를 파탄국면으로 몰아갈 수 있으므 합리적 대안이 필요하다.
[출처] 군사저널 - http://www.gunsa.co.kr/bbs/board.php?bo_table=B01&wr_id=572